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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기도회 자료입니다. 2007/11/2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158
교회여성평화 연대 제12회 평화를 위한 기도회

소수자 차별 금지를 위하여

일시: 2007년 11월 23일(금) 오후2시
장소: 맑은샘교회
주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도회 순서>

1부. ‘소수자 차별 금지법’의 발의 취지와 과정, 현재 문제점 -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

2부. 소수자 차별 금지를 위한 묵상 및 기도회

2-1. 여는 기도

우리는 기도 안에서 서로 도와야합니다.
우리 마음을 자유롭게 합시다.
기도를 너무 길게 끌지 말고 오히려 짧게
그러나 깊은 사랑을 지니고 합시다.
기도하지 않는 이들을 대신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테레사>

2-2. 평화와 연대 등에 관한 글과 그림 나눔(글이나 그림이 적힌 종이를 조용히 읽으며 잠시 묵상한다.)

2-3. ‘그들만의 리그’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그들이 고통당하는 일곱 가지 이유

1) 그들의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끊임없이 마이너리그에 속해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들도 같은 인간임을 선포하는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그나마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는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의 특수가치에서 나온 동성애자에 대한 적대적인 문화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들은 다시 정죄되었습니다. 종교의 지배권력이 보편성을 버리고 특수성을 강화했을 때, 그 종교는 사회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차별과 배제의 집단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시고, 작은 차이도 쉽게 차별의 이유가 되는 이 무자비한 세상에 한없이 넓은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오늘 예수님은 이런 저런 이유로 정죄당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당신들의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2) 그들은 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을 나왔거나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자식들만은 제대로 교육시켜 보자고 용을 쓰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도 승천은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좌절을 느낍니다. 내 자식만은 잘 교육시키겠다는 열망이 온 나라를 교육광풍에 휩싸이게 만들고 아이들은 소위‘명품교육’에 질식해서 하루 하루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많이 배우지 못한 것으로 인해, 혹은 배웠더라도 브랜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곳에서 배운 사람들을 향해, 그래서 사람 대접 제대로 못 받는 이들에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모두가 용이 되면 안되겠니?”

3) 세상에는 4인용 식탁이 필요한 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미 가족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형식상의 부모와 직계자손으로 이루어진 가족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획일주의이며 이기주의입니다. 소위 ‘정상적인’ 가족형태를 이루고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해 그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가족이다.”

4) 출신국가로 인해 3류 인간 취급하는 차별주의자들에게 그가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나그네였던 것을 기억하라.”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조건으로 재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귀하게 보시고 공평하게 사랑하신 그분의 눈길을 닮고 싶습니다.

5) 언어로 인해 차별받는 이들을 향해 그분은 보여주십니다. 제국의 언어를 마다하시고 민중의 언어인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혼란케 하신 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던 오순절 사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역사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배우기에는 너무 비싼 말, 사용하기에는 너무 창피한 말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언어에 계급을 만드는 우리 모두를 그 언어로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6) 율법주의자들은 병든 자들을 보면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어서 저런 병에 걸렸나? 아니면 그 부모가 죄를 지어서 그런가?” 병들어 고통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죄로 인해서 병에 걸렸다는 그 오래된 확신은 병든 자들을 더 서럽게 하였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차별에 대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우리 사회는 이제 병력에 의한 차별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율법주의적 손가락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 된 자격을 되돌려 주어야 할 때입니다.

7)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으로 인해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인순이는 예쁩니다. 인순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등식으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착하고 예쁜 그녀는 그러나, 세상에 나오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합니다. 바로 전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성실하든 착하든 그녀를 재단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전과 기록이 있냐 없냐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전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해“나도 너를 용서하니 평안히 가라”는 주님의 시선을 가질 때입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던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자들과 같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차별의 벽을 허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아닐런지요.

2-4. 함께 부르는 찬양 - “당신의 평화가 우리의 만남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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